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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조준목사 설교

[박조준목사] 훌륭한 하나님의 종 - 뉴스포유

사도행전 6:1~15

우리가 지난 시간까지는 사도들이 말씀 전파하는 일 때문에 수치를 당하고 위협을 받으며 매를 맞고 옥에 갇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니까 마귀는 다른 술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마귀는 언제나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방해하는 술책을 쓰는데, 그대로 안되면 또 다른 술책을 씁니다.

마귀는 교회의 분열을 시도했습니다. 성도들 사이의 내부적인 다툼이 생기게 만들었습니다. 분열이 교회를 망하게 한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어려운 처지에 이르렀을 때에도 사도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랐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큰 문제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혼자 사는 부인들이 구제에 빠지는 것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면 도와 주면 될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나 사도들은 나에게는 심각하게 보이지 않는 문제라도 다른 사람에게 심각하면 그것을 진지하게 다루었습니다. 사람의 심령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중요한 책임을 맡은 사도들에게 육신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도 필요하지만 경중을 따지면 복음 전하는 것이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지만, 사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하던 일을 멈추고 불평을 처리하였습니다.

이것은 지도자의 훌륭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사도들은 문제가 일어났을 때, 그것을 조용히 관조한 다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해결했습니다. 사도들은 사람들을 함께 불러 모아 놓고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신 일이 무엇임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여기 6장 2절의 ‘일삼는다’는 말과 6장 4절의 ‘전무한다’는 말은 같은 내용의 말입니다. 여기 ‘일삼는다’는 말은 물론 공궤, 다시 말하면 음식을 시중드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사도들의 말씀을 전파하는 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오늘의 교회도 교역자는 기도하고 말씀 전파하는 일에 전념하도록 하고, 그 밖의 일은 제직들이 책임지고 분담하게 된 것도 이 성경에 근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것은 매우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몇 가지 과업을 맡겨 주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부르심이기도 합니다.

먼저 회개하고 믿으라고 부르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 14~15절에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되어 따르라고 부르셨습니다. 누가복음 9장 23절에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그 다음은 일꾼으로서 앞장서라고 부르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 1~2절에 “이후에 주께서 달리 70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추수할 일꾼을 부르십니다. 뿐만 아니라 전도하는 일에 지도자로 일하라고 부르십니다. 마가복음 3장 14~15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예수님은 사도들이 전도사업을 하는 데 최고의 모범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주님 행하신 대로 행하였고, 그 결과 제자들의 수가 날마다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 보세요. 모든 일이 잘 되어갈 때에 마귀는 공격을 시작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전도사업이나 모든 일이 순탄하며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없어 보일 때 경계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모든 일이 순탄할 때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을 지켜 주시기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교역자의 사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과 그들을 말씀으로 먹이는 일이 그것입니다. 사도들은 두 가지 일에만 전념하였습니다.

첫째는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하신 일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에 그 모범을 따랐습니다. 제자들을 택하시기 전에 밤을 새워 기도하신 일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바쁘게 시간에 쫓겨 다니시면서도 기도하시러 한적한 곳에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도 보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새벽에 기도하시는 것도 보았을 것입니다.

기도는 주님의 삶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사도들은 그 모범을 따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들어 써 주시기를 바라는 사람은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따라서 기도는 예수님의 전도사업에 있어서 기초석이 될 것입니다.

기도할 때 다른 사람에게 증거할 수 있는 문을 열어 줍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 4장 2~4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기도는 믿는 자를 제자로 세울 수 있는 열쇠입니다.

골로새서 1장 9~10절에 보면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사도들은 기도에만 전념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들 중에서 설교를 자기 자신의 생각으로 인간적인 지식이나 철학으로, 혹은 개인의 정치적인 견해로 끌고 나가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말씀을 영적으로 먹이지 아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이 말은 설교자가 역사나 신학, 철학의 교리를 배워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영적인 것이 앞서야 한다는 말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건강해지고 주님께 더 헌신하고 봉사하려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질 때 말씀 전파에 전무하는 일을 바로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먹인다는 것은, 음식물이 우리의 육체적인 몸에 건강을 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간의 영적인 삶을 강건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이해가 되고 새겨져서 우리의 삶에 실천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매일 매일의 삶을 통해서 꼭 필요한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인 우리가 말씀을 받아들일 때 우리 자신의 뜻과 스스로 의롭게 생각하는 것과 세상적인 것, 위선, 교만, 불신앙에서 완전히 떠나야만 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시 119:104).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영이 깨우치는 역사를 통해서 우리의 삶에 살아 계시며 또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마음에 간직해야 할 것들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전도사업을 위해서 잃은 자를 구하시고, 제자를 삼으시고, 일꾼을 세우시며, 지도자를 훈련시키셨습니다. 이처럼 행하신 일이 나중에 사도들에게 있어서 큰 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도 먼저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 전파하는 일을 씨 뿌리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예수님뿐만 아니라 사도 베드로도 말씀의 씨를 강조하였습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의 씨를 뿌려야만 합니다. 물위에라도 씨를 뿌리면 당장은 아무런 효과가 없어 보이나 여러 날 후에는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말씀을 통해서 믿는 사람의 심령이 튼튼히 세움을 입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그의 편지에서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벧전 2:2)고 했습니다.

어린아이가 잘 자라고 튼튼해지려면 음식물을 잘 섭취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심령이 튼튼히 자라서 성숙한 자리에 이르려면 말씀의 젖을 사모해야 합니다. 어린애가 젖을 안 먹으면 어디엔가 병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심령이 말씀을 사모하지 아니하면 그 심령은 이미 병이 들었다는 사실이 분명합니다.

제가 감사하는 일 중의 하나는 요사이 교회마다 전에 비해서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일이 많아진 것입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깊이 연구해야 우리의 심령이 튼튼히 세움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일꾼을 키우는 데 말씀이 필요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그들의 과부들이 식량 구제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불평했을 때, 사도들은 이처럼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파하는 일에만 전념하고 그 문제에 대한 해결로 몇몇 사람을 뽑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행 6:3)라고 했는데, 이것을 보면 사도들은 말씀 전파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방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곱 사람들을 택한 것도 보세요. 그 사람을 택하는 조건을 보면 훌륭한 지도자를 택하는 기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은 식량을 분배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선한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은 일이란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 직책에 적합한 일꾼들에게 그 직분을 맡기면 그 교회는 반드시 번성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일곱 집사를 택할 때 어떻게 선택했어요? 사도들이 임명했습니까? 아닙니다. 사도들은 다만 그 직책을 위한 자격 조건만을 제시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온 교인이 직접 일곱 집사를 택했습니다.

일곱 집사님 중에 한 분이 스데반 집사님이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믿음과 능력과 지혜와 용기와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6장 8절에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귀한 사역을 하였음에도 많은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주님의 사역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 뛰어난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역경에 직면하기 마련입니다. 왜 회당의 사람들이 스데반 집사의 말에 반대를 했을까요? 그들은 전통을 따라 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11절 이하의 말씀을 보세요. “사람들을 가르쳐 말시키되 이 사람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 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스데반을 반대한 사람들은 두 가지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매우 교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스데반의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였습니다”(10절). 이처럼 스데반 집사는 그의 비판자들이 도저히 대항할 수 없을 정도의 능력과 지혜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였습니다. 공부를 많이 한 유식한 유대인들이 스데반 집사를 볼 때 모욕감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들의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들의 아집도 더 이상 유지할 방도가 없이 되어 버렸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을 완전히 오해하였습니다.

이것 보세요. 스데반 집사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눠주는 일만을 그의 책임으로 알고 감당했다면 이와 같은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스데반 집사는 자기의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은 등한히 여기고 가볍게 생각해서 그랬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자기의 책임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구제 식량을 나눠주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충성스럽게 자기에게 맡겨진 책임을 잘 감당했으리라고 믿습니다.

평범한 일, 맡은 그 일의 중요성을 잊어버리고, 마음속에 불평과 불만을 품고서 전도사업에만 투신하게 될 날을 고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마귀에게서 온 것입니다. 마귀는 언제나 어떤 책임을 맡았든지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우리를 낙심시키려 하고 무관심하게 하고 불만을 품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아가서 1장 5~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계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내가 일광에 쬐어서 거므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은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이 사람은 자기가 포도원지기가 된 것이 자기 형제들이 자기를 미워해서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마음속에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포도원지기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포도원에는 나와 있으니까 강한 햇빛에 얼굴은 얼굴대로 계달의 장막처럼 검게 그을렸습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자기가 맡은 일에 불평을 하는 사람처럼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는 훌륭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맡은 직분을 충성되게 감당할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데반 집사는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시간 있는 대로 복음을 전파하려는 확신과 열의를 가졌고,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인식하였습니다. 본문에서 읽어본 대로 그는 집사이면서도 성경을 많이 공부하고 연구했기 때문에 성경을 자유자재로 구사했습니다. 이것을 볼 때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성경을 잘 압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려는 강렬한 의지가 없을 때 이런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파하는 데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배워서 잘 알아야 하고 그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그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의 뜨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에게는 이와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스데반 집사처럼 성령이 충만하고, 지혜가 있고,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며, 말씀의 확신을 가지고 전도의 열을 가져, 하나님을 아직도 알지 못하고 어둠의 세계에서 허덕이는 심령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바로 위대한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이 사도들을 보내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조용히 해변에 가서 쉬셨습니까?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니까 안심하고 계셨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절에 보니,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시기를 마치시고 이에 저희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일을 시키고 자기는 일하지 않는 감독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언제나 영적인 싸움에 참예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복음전파에 전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처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과 존경의 대상이 되고 복음전파의 확신과 열의가 있어서 이 민족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놀라운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을 보세요.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했습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가시든지 무엇을 하시든지 하나님을 바라보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의 얼굴에 비쳐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시는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박조준 목사
웨이크사이버신학원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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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조준목사] 훌륭한 하나님의 종 - 뉴스포유

우리가 지난 시간까지는 사도들이 말씀 전파하는 일 때문에 수치를 당하고 위협을 받으며 매를 맞고 옥에 갇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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