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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조준목사 설교

[박조준목사] 하나님의 일꾼 선택

사도행전 16:1~15

사도 바울은 적개심이 강한 지역인 루스드라에 왔습니다. 전에 바울이 루스드라에 방문했을 때 매를 맞아 죽을 뻔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방문했을 때는 그의 평생에 가장 기쁜 일 중의 하나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닌 디모데를 만나게 된 일입니다.

본문 1~2절을 보십시다.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니.”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제자로 삼아 그를 거기의 형제들과 함께 하도록 초대했습니다. 디모데는 믿는 자들 사이에 칭찬이 자자한 제자였습니다. 왜 사도 바울은 그의 제자로 디모데를 택하였을까요? 바울이 디모데를 제자로 삼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디모데는 종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22절에 보면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간 더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디모데는 사도 바울을 도운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기꺼이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일하는 것은 다른 말로 사람을 섬기는 일입니다. 아마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나서서 일하면서 그를 진심으로 도와서 일할 사람을 찾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이란 물론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디모데를 만나게 되니 바울의 마음은 한없이 기뻤을 것입니다. 디모데는 종의 마음을 가지고 일하는 일꾼이었습니다.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기뻤을까 짐작이 갑니다. 세상에서 가장 기쁜 일은 평생의 고락을 같이 하며 생사까지도 같이 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와 같은 기쁨을 누리게 됐습니다.

사실 우리는 남을 섬기기보다는 남에게 섬김을 받기를 더 원하기 때문에 항상 부족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섬김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위해서는 부족한 종일 뿐입니다. 예수님의 모범은 사람을 섬기는 데 있었습니다.

둘째로, 디모데는 쓰임받기를 원했습니다.

디모데가 사도 바울의 동역자가 된 후에도 늘 사도 바울의 전도 사업을 위해 돕고자 애썼습니다. 사도행전 20장 4절에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오와 드로비모라”고 한 말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에게는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을 위해서나 하나님이 나서라고 하면 “주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써 주소서” 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셋째로, 디모데는 사도 바울과 뜻을 같이 하였습니다.

함께 일하려는 사람은 뜻이 같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자주 충돌이 생기고 일을 진행해 나가는 데 그만큼 지장이 생깁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린 대로 바울과 바나바도 함께 일을 했으나 그들 사이에 심각한 의견의 차이가 생기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다툼이 생겼고 종래는 갈라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다투는 것보다는 갈라서는 편이 낫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빌립보서 2장 20절에도 “이는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불타오르게 하신 목적을 갖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오직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을 위해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일했습니다.

넷째로, 디모데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신실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17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를 인하여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했습니다.

디모데를 고린도교회에 신실한 아들로 소개를 했습니다. 디모데는 오랜 시간을 바울과 함께 보냈기 때문에 그는 바울의 메시지와 그의 삶의 방식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가 바울의 메시지와 그의 삶의 방식을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디모데가 그 교훈대로 신실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바울이 행한 바를 그 자신이 어떻게 행할 것일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대로 살았습니다. 이처럼 디모데는 모든 일에 신실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일꾼으로 택하셨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말씀을 따라 교회들을 신실하게 섬길 수 있는 제자들을 세우고, 그들을 양육하고, 훈련시키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3장 2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한다”고 하였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비전을 통찰했고 그것을 전도 사업에 적용하여 다른 사람에게도 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2절에 “또 네가 많은 증인들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났을 때 그에게서 이와 같이 귀한 것들을 발견하고 그의 기쁨이 얼마나 컸었는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마음과 뜻을 같이 하여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이상 기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와 같이 종의 마음을 가지고 일하고, 하나님의 쓰임을 받으려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고, 자기와 뜻이 같은 신실한 사람을 만나게 될 때 천하를 얻은 것 같은 기쁨과 만족, 그리고 삶의 의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일꾼을 택하고 훈련하는 데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이라면 그와 같은 사람을 발견하였을 때의 흥분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어떻게 이처럼 함께 일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일꾼을 택했습니까?

먼저 그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고 볼 수 있는 눈을 주시지 않으면 그런 사람을 바로 내 옆에 놓고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평생을 함께 살아가며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게 될, 배필될 사람을 구하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개의 젊은이들이 복잡한 조건을 내세우고 이런 사람을 구하느라 여러 번 소개를 받아 만나기도 하고 자기 스스로 찾아다니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만나게 해 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일꾼된 사람을 만나면 먼저 그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선택의 핵심 요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그에게로 인도하신 사실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하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일할 사람을 택할 때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위대합니다. 사랑해야 제자를 삼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교제를 가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직접 보여 주어야 합니다.

주님의 도덕 기준은 최상의 것입니다. 그 분의 헌신 수준은 최고의 것입니다. 그 분의 사업은 최고의 도전을 요구했고, 그분의 뜻은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생애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생애였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세상의 어느 위대한 선생님과도 비교할 수 없는 권위 있는 말씀이셨습니다.

또한 동역자를 삼았으면 일하게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할 일을 맡기면 그 사람은 자기의 일로 생각하고 일을 합니다. 그런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작은 일, 간단한 일부터 맡겨보십시오. 작은 일을 감당하는 것을 보아서 그 다음 좀 더 큰 일을 맡기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무리들에게 말씀을 하셔야겠는데 서 계실 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배를 좀 빌리라고 해서 바닷가에서 얼마 떨어진 곳에 들어가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베드로의 삶 전체를 요구하셨습니다.

자기가 필요한 존재라고 느끼지 못할 때 사람들은 소속감을 주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 곳으로 떠나가 버리고 맙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가 생동하는 교회가 되고 일꾼을 키우는 교회가 되려면, 교인 누구나가 구경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이 모두가 어떤 방면에서든지 일하는 교회가 되게 해야 합니다.

가만히 보면 이 교회에서는 자기가 일할 마땅한 자리가 없으니까 자기를 필요로 하는 다른 교회로 찾아가는 것을 봅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것은 그 교회의 책임입니다.

교회는 사랑으로 서로 교제하며 할 일을 찾아 일하는 곳입니다. 초대교회가 이와 비슷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즐거운 교제를 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래서 그 모임의 사랑이 증명되고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유익하게 쓰이고 기쁨이 충만함을 볼 때 사람들은 그 매력에 자연히 끌리게 마련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모임에는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을 때 생명력을 잃은 것이고 생명력을 잃은 모임이 다른 사람의 관심도 끌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웃과 함께 일할 뿐 아니라 그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이 그 사람에게 유익이 되어야만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노동자이든, 간호사이든, 의사이든, 기술자이든, 교수이든, 군인이든, 기업가이든, 정치가이든, 가정주부이든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과 자신이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를 알고 거기에 맞추어 살도록 해야만 할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교제와 토론 중심의 모임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는 앉아서 이야기하기를 싫어하고 직접 일하는 데 뛰어들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에게는 기회와 전도 사업의 목표를 정해 주어서 일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훌륭한 사람들이 여러분의 문전에 쇄도할 것입니다.

우선 그들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심중이 어떠한지 또 그들이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들이 교훈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십시오. 그들과 함께 증거하십시오. 그들과 함께 말씀을 연구하십시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너는 편견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편벽되이 하지 말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이 그의 믿음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일의 동역자요, 제자인 디모데를 선택할 때 얼마나 신중히 했는지 모릅니다. 디모데를 만나고 그의 잠재력을 가늠한 다음 바울은 디모데를 전도단에 참여시켰습니다.

디모데에 대한 사도 바울의 바램은 그의 전도 사업을 확장시켜서 디모데로 하여금 좀 더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6장 3절에 “바울이 그를 데라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였지만, 그는 유대인들도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얼마나 소원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에 보내는 편지에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롬 10:1)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제자 디모데가 유대 사람들에게도 완전히 용납되기를 원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생각한,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된 예루살렘 회의에서 이루어진 결정은 분명히 영적인 것에 중심을 둔 것이었고 따라서 바울의 전도단 일행이 그 결정된 사실을 각 교회에 전달했을 때 모두가 만족하게 받아들였습니다. 4~5절에 “여러 성으로 다녀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 하니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무엇이며 거기에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들었을 때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기로 작정하고 기독교로 개종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교회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굳건해졌습니다. 하나님과 멀리 떠났던 심령들이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러니 믿는 사람의 수도 늘게 되고 그들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덕성도 쌓아올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교회에서나 전도 계획에서 추구해야 할 필수적인 요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균형 있게 성장해야 합니다. 목사는 전도 설교를 하고, 새로 믿기로 작정하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의 수는 늘어나지만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드뭅니다. 혹은 목사가 말씀으로 알차게 교인들에게 먹이고 착실하게 신앙의 훈련을 하여 성도들이 믿음 안에 굳게 서지만 복음 전파가 전혀 없어 새로 믿는 사람이 전혀 없는 교회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교회의 모습 중에 어느 하나도 바람직한 것은 못됩니다.

본문 5절에서 우리는 전도와 제자 양성이 완전히 균형을 이룬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에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와 같이 성도 여러분의 믿음이 날마다 굳어지고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날마다 더하여 가는 축복받은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여행을 계속함에 따라 성령께서 주관하고 계신 것을 더욱 더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첫 시간에도 말씀드린 대로 이 사도행전은 다른 말로 하면 ‘성령 행전’입니다. 성령께서 사도들을 통해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기록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사도들의 전도 일행이 가는 길마다 모든 사람들에게 역사하셨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관한 예수님의 약속은 말씀 그대로 완전히 실현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일찍이 제자들에게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주님의 일꾼들과 함께 하시면서 역사의 흐름을 뒤바꿔 놓는 놀라운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전혀 생각도 못했던 일이지만 주님은 그가 마게도냐로 가기를 원하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환상 중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본문 9~10절에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리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은 사람의 생각과 계획과 다릅니다. 이사야 55장 8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말씀이 너무 옳은 말씀인 것을 뼈저리게 체험합니다.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방향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계획하였던 것과는 너무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그것이 얼마나 축복이 되는지 모릅니다.

바울은 마게도냐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마게도냐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여자들, 귀신들린 소녀, 억울하게 매맞고 고랑을 차고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하나님께서는 미리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루디아는 주님께 마음의 문을 열었고, 귀신은 소녀에게서 도망을 했고,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고 옥에 갇혔습니다. 왜 그들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어요? 귀신들렸던 소녀는 그녀를 돈벌이에 이용하고 있었던 사람들의 소유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못된 일은 세계 어디에서도 행해지고 있는 일입니다. 귀신들렸던 소녀를 소유하고 있던 주인들이 자기들의 돈벌이 수단이 끊어진 것을 깨달았을 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었어요? 터무니없는 고소를 제기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전도단이 시민권을 유린했다고 비난했고, 그밖에 바울과 실라는 그들이 범하지도 않은 죄목 때문에 처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굉장한 매를 맞았습니다. 마게도냐에는 바울과 실라에게 동정심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기가 막힌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에게는 어려운 사건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들은 낙심하거나 불평하거나 원망과 시비함이 전혀 없이 밤중에 기도하고 찬미했습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옥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열리고 고랑이 풀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날 밤 간수가 회개하고 그의 가족이 구주를 영접하고 구원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함께 할 때, 들어와도 나가도, 일어서도 앉아도, 건강해도 병들어도, 어떤 상황에서도 복이 된다는 말씀이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고 믿습니다.

여러분, 개인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면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박조준 목사
웨이크사이버신학원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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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적개심이 강한 지역인 루스드라에 왔습니다. 전에 바울이 루스드라에 방문했을 때 매를 맞아 죽을 뻔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방문했을 때는 그의 평생에 가장 기쁜 일 중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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