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4 : 9 ~ 22
어떤 이는 인간의 일생을 한 해에 비유해서 말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봄은 청년의 시대에 해당합니다. 초목의 잎이 돋아나고 아름다움 꽃이 피고 새들이 노래하는 그런 모든 것이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청년의 시기가 그렇습니다. 꽃이 피는 것과 같이 육체가 잘 발육하고 여러가지 일을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청년을 가리켜 청춘(靑春)이라고 말합니다. 이팔청춘이란 말도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여름은 장년 시대에 해당된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름은 녹음방초가 우거지는 때입니다. 모든 곡식이 자라고 열매가 자라고 모든 것이 왕성하는 때가 여름입니다. 마찬가지로 장년 시대는 모든 활동이 왕성한 시대입니다. 여러가지 사업을 계획도 하고 추진하는 인간 일생에 있어서 가장 활동이 많은 시대입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각 방면으로 활동이 완성한 시기입니다.
그러면 가을은 인생의 노년기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을 하늘은 맑습니다. 그래서 청추(淸秋)라는 말이 있습니다. 검은 구름이 걷히고 맑은 날이 옵니다. 가을은 열매를 맺는 때입니다. 곡식이 익는 때입니다. 모든 열매가 익는 때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인생의 일생 가운데 노년 시대는 다 완숙한 시대요, 열매를 많이 맺는 시대요, 특히 늦가을이 되면 모든 나뭇잎도 자줏빛 노란색 붉은색으로 물들어 온 산야를 덮는 그런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설악산 내장산의 단풍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우리 인생도 노년기는 이렇게 아름다운 시대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일생을 한 해에 비유해서 말 할 수 가 있습니다.
혹은 인간의 일생을 하루에 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성경에 보면 그런 사상이 있습니다. 시편 90편은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모세의 기도인데 거기 14절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로 만족케 하사” 여기서 아침이라는 말은 하루의 아침이 아니고 인생의 아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아침 다시 말하면 청년의 시대는 아침과 같습니다. 아침은 일어나는 때입니다. 아침은 모든 것을 경영하는 때입니다. 아침은 모든 것을 시작하는 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의 시대는 시작하는 때입니다. 가정을 시작합니다.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여러가지 생각도 많고 경영도 포부도 꿈도 많은 때가 청년의 때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일생을 하루에 비하면 낮은 장년에 비할 수가 있습니다. 낮에는 사람들이 일하러 나가는 때입니다. 농사하는 사람은 농터로 나갑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터로 나갑니다.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장에 가서 일합니다. 사무원은 사무실에서 일합니다. 가리키는 사람은 학생들을 가리킵니다. 낮은 열심히 일하는 때입니다.
마찬가지로 장년 시대는 청년 때의 꿈과 포부를 실현해 보려고 그 이상을 실현해 보려고 다 각기 자기의 방면에 나가서 열심으로 땀을 흘리며 활동하는 그런 시대입니다.
그런데 낮이 지나면 해가 서산에 넘어가게 되고 점점 서산에 가까워지게 되면 그것을 무엇이라 합니까? 저녁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에도 저녁이 있습니다. 노년의 시대는 인생의 저녁이라도 해도 될 것입니다. 저녁은 일하다가 쉬는 때입니다. 저녁은 일터로 나갔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때입니다. 그런데 저녁에 제일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해가 서산에 넘어가게 될 때 저녁 노을이 서산에 덮이게 됩니다. 낮에 검푸르던 구름, 안개에도 햇빛이 비치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것을 저녁노을이라고 말합니다. 저녁은 아름다운 노을을, 아름다운 낙조를 보는 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노년 시대는 인간의 낙조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디모데후서 4장 9절에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말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21절에 보면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있었고 이 편지를 받은 디모데는 바울이 설립한 에베소 교회를 목회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자기가 겪은 경험을 함께 나누면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자기가 겪은 경험을 함께 나누면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이렇게 간곡히 부탁하는 이유를 우리는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여기 기록한대로 우선 로마에는 일꾼이 부족했습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다른 동역자들은 또 다른 일이 있어서 다른 데로 바울이 보냈습니다. 누가만 로마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가 로마로 와서 좀 도와주기를 원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겨울이 오게 되는데 쓸쓸하고 냉랭한 감방에서는 밤마다 날이 점점 차가워 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하나밖에 없는 외투가 멀리 드로아가보의 집에 있는데 그것도 가지고 왔으면 하는 부탁입니다. 그리고 몇 권의 책도 두고 왔는데 그 책도 가지고 오기를 바랐습니다. 물론 그런 것이 다 원인이 아닌 것은 아니었지만 그보다도 간절한 이유가 바울에게 있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여기서 기록한대로 자기 자신의 최후가 임박해 오는 것을 예감한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관제와 같이 벌써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다”고 말씀했습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가 사랑하는 제자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를 보고 싶었고 그리고 그가 친히 만나서 마지막으로 부탁할 말씀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더러 거듭해서 오라고 하면서 특히 ‘겨울 전에 오라’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지중해를 겨울에 항해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을에 배가 떠나지 아니하면 겨울을 지나서 그러니까 적어도 넉달 후에야 다시 배가 지중해를 항해할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일 디모데가 가을에 오지 못하면 4, 5개월 후에야 로마에 오게 될 터인데 그 동안 바울의 신상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예측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겨울 전에 오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디모데가 이 부탁을 바울에게서 받고 만사를 제쳐놓고 가을에 배를 타고 로마에 와서 사도 바울의 최후 순교할 때 같이 있어서 최후의 봉사를 했는지 혹은 그렇지 못해서 여러가지 얽매이는 일에 하루 이틀 지체한 때문에 그만 마지막 배를 놓치고 부득이 몇 달 후 다음해 봄에 로마에 와 보니 사랑하는 선생님이요, 사도요, 전임 목회자요, 믿음의 아버지인 바울은 이미 순교를 당해서 쓸쓸한 무덤가에서 그를 대하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만일 디모데가 부득이한 일로 늦게 로마에 와서 바울의 최후를 지켜보지 못했다고 하면 디모데에게 있어서는 천추의 한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디모데가 그 전에 와서 사도 바울을 뵙고 그의 최후도 지켜보며 봉사한 줄로 믿습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겨울철에 너는 어서 오라” 사도 바울의 마지막 이 말씀은 우리의 심금을 우리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대하면서 이것은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주신 말씀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사람을 향하여 주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겨울이 옵니다. 겨울이 오면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해야만 합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인생의 봄이 있습니다. 여름이 있고 가을이 있습니다. 청년 시절, 청춘의 때는 인생의 봄입니다. 모든 것이 왕성하게 일하는 때는 인생의 여름, 장년 시절은 여름 같은 때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가을이 있습니다. 열매 맺는 계절입니다. 노년은 말하자면 인생의 가을입니다. 인생 낙조입니다. 아름다운 때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겨울이 있습니다. 인생의 밤이 있습니다. 인생의 겨울을 위해서 준비 할 일이 또 있습니다.
여기 오늘 주신 말씀에서 “겨울 전에 오라”는 말씀은 ‘기회가 지나기 전에 오라’는 뜻이 있습니다. 기회가 지나기 전에 할 일이 있습니다. 전도서 3장을 읽어보면 ‘천하만사에 기회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항해 할 수 있는 때가 있고 항해 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여행도 할 수 있는 때가 있고 여행 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일도 할 수 있는 때가 있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공부도 할 수 있는 때가 있고 공부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씨를 뿌릴 때가 추수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 생활의 성공과 실패는 이 기회를 바로 포착하여 일을 하느냐 못하느냐 하는데 달려 있는 것입니다.
봄은 씨를 뿌릴 때입니다. 씨를 잘 뿌리면 그 해에 많은 수확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씨를 뿌릴 때 기회를 놓치고 뿌리지 못하면 그해 농사는 실패로 돌아갑니다. 유년 시절 소년 시절을 공부할 때입니다.
그때 공부 열심히 하고 학문과 기술을 닦으면 일생에 성공적인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뿌릴 때 뿌리지 않으면 일생은 실패로 돌아가기가 쉽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유명한 달란트 비유가 있지요 이 비유가 물론 우리의 신앙생활에 여러가지 깊은 진리를 가르쳐 주지만, 주인이 먼 곳에 가면서 종 셋을 불러 하나에게는 다섯 달란트 다른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 그리고 또 다른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면서 내가 여행을 다녀오는 동안에 이것을 가지고 장사를 잘하라고 분부했습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서 셈하자고 할 때 다섯 달란트 받았던 사람, 두 달란트 받았던 사람은 각각 갑절로 100퍼센트 남겨 가지고 와서 “주인이시여 나에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다른 종은 “나에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주인이 기뻐서 하는 말이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내가 큰 것으로 네게 맡기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은 장사하라고 기회를 주었지만 장사하지 않고 그냥 땅에 묻어 두었다가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갖다가 주인에게 드렸습니다. 이 때 한 달란트를 돌려 받은 주인은 크게 노했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하면서 한 달란트 맡겼던 것까지 빼앗고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어쫓았습니다.
왜요? 다른 두 종은 장사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장사를 잘 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은 그 기회에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산양과 면양의 비유도 이면을 가르쳐 줍니다.
이 다음에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천하만국을 다 앞에 놓고 목자가 산양과 면양을 갈라놓듯이 온 세상 사람들을 좌우 편으로 갈라 세우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른편 면양 다시 말하면 의인들을 향해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만세 전부터 내 아버지께 축복 받은 너희들은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복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왜요?
“내가 주일 전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너희들이 찾아보았고 내가 목마를 때에 너희들이 마실것을 주었고,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너희들이 와서 나를 돌아보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의인들이 물었습니다.
“주여, 언제 우리가 그런 일을 했습니까?” 그때 주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이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
이 사람들은 좋은 일을 할 만한 기회가 있을 때에 좋은 일을 한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었습니다. 병든 사람을 심방했습니다. 그러나 왼편에 있는 산양 그러니까 불의한 사람들을 향해서는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저주받은 너희들아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준비한 영원한 불 가운데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왜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마를 때에 마실것을 주지 않았고, 병났을 때 와서 돌보지 않았고,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때 이들도 “주여 언제 우리가 주님이 그렇게 된 형편을 알았습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주님 말씀이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사람들은 좋은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께서 주셨지만 그 일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성경에 뭐랬어요?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했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도 역시 이 면을 가르칩니다.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기회가 있을 때에 기름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신랑이 더디 왔어도 기름이 많으니까 염려 없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불은 준비했지만 기회가 있었는데도 기름은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신랑이 더디오니까 불이 꺼지게 되었습니다. 그때에야 기름을 구하러 나아갔습니다. 그 동안에 신랑이 왔습니다. 문은 닫혔습니다. 손님은 다 들어갔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문을 열어 달라고 아무리 졸라 보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름 준비할 기회가 있었는데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천하 만사에 다 기회가 있습니다. 이 기회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기회는 지나갑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마땅히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세월이 빨리 지나갑니다. 학생은 지금이 공부 할 때입니다. 시간 허비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때 놓치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공부하십시오. 자녀가 부모님 섬기는 것도 기회가 있습니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 효도를 극진히 하셔야 합니다. 부모님이 항상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떠나실 때가 옵니다. 그 다음엔 아무리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싶어도 효도 할 기회가 다시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가정에도 겨울이 옵니다. 부부간이라도 해도 영원히 동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같이 지나다 보면 서로가 귀한 줄 모르기가 쉽습니다.
남편을 의례히 있는 것으로, 아내를 의례히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 등한히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가정에도 겨울이 옵니다. 매일 저녁 돌아오던 남편이 안 돌아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일 다보고 돌아오면 반갑게 맞아 주던 그 아내의 얼굴이 안 보일 때가 있을 것입니다. 서로 귀한 줄 알고 서로 아끼고 서로 도와주고 겨울이 오기 전에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후회할 날이 올 것입니다.
어떤 남편은 아내가 살았을 때는 그저 되는대로 대하고 속썩이고 그러다가 아내가 아이들 놓고 세상 떠나고 나니까 기가 막힙니다. 그래서 아내의 관옆에 앉아서 죄를 자복하며 통곡하는 남편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기회는 지나갔습니다. 이미 겨울이 왔습니다. 그전에 부부 관계의 축복을 알아서 서로 귀히 여기고 서로 사랑해서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고 행복한 가정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봉사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주님을 봉사하는 것도 언제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언제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겨울이 옵니다. 우리교회 수요 성가대가 아주 잘 합니다. 성가대원으로 봉사하는 것도 언제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겨울이 옵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때가 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열심히 봉사해야 합니다.
성도들을 심방하는 것도 언제나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을 하는 것도 언제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겨울이 옵니다. 주를 봉사할 수 있을 때 감사한 마음으로 정성 다해 봉사하세요. 봉사할 수 없는 겨울이 옵니다.
이것은 주님을 봉사하는 일뿐 아닙니다. 어떤 봉사든지 그렇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도 기회가 있을 때 정성껏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 행로는 일방도로입니다. 한번 지나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합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가고 가을 지나면 겨울이 옵니다. 기회 있을 때 좋은 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겨울이 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몇가지 교훈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겨울이 오기 전에 추수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않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서 추수하게 되었느니라” 곡식이 무르익어 희어졌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한국의 영적인 밭이 이렇습니다. 30여년 동안의 군사 정권 시절에 우리 국민의 도덕의식은 만신창이 났습니다. 그 동안 심은 것을 우리는 지금 거두고 있습니다. 한 달이 멀다 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대형 사고가 일어나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갈팡질팡하는 상태에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심령은 지금 비어 있습니다. 메시야를 기다립니다. 구주를 기다립니다. 예수님 친히 말씀하시기를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땅에 때가 찼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습니다. 복음을 기다립니다. 우리 민족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영적인 가을에 우리가 놀 수 없습니다. 구경만 하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추수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신령한 추수의 계절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나 생각해 보세요. 주님께서는 일꾼을 부르십니다. 너는 어서 속히 오라고 부르십니다. 겨울 전에 오라고 부르십니다. 여러분, 이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니까?
둘째로, 이 말씀은 우리 하나 하나의 심령을 향하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어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겨울 전에 기회 지나기 전에 어서 오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다 예배당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배당에 나오셨다고 해서 꼭 주님께 나오셨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십니다.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과연 내가 주님 앞에 나왔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는 다 내게로 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과연 내 심령이 주님께 나아왔습니까? 과연 내가 내 죄를 온전히 회개하고 돌아서서 세상은 뒤로 두고 주님을 향해서 나아왔습니까? 주님을 내 구주로 삼으십니까? 회개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큰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닭이 울 때 그 소리 듣고 곧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회개했습니다. 베드로는 회개할 기회에 회개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큰 죄를 지을 것을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룟유다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마지막 저녁에 잡수시고 나서 여러 제자들을 향해서 “너희 가운데 하나가 장차 나를 팔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다른 제자들이 들으라고 하신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유다에게 회개를 촉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강퍅한 유다는 회개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듣기 싫으니까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결국 멸망하고야 말았습니다.
주님께 오는 것도 기회가 있습니다. 겨울 전에 와야 합니다. 여러분 그 기회가 언제입니까? 지금입니다. “너희가 오늘 그 음성을 들으면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 “지금은 은혜 주실 때요 구원의 날이로다”
오늘 이 음성을 듣고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맙시다.
지금이 은혜 주실 때입니다. 지금이 주님께 올 때입니다. 이 시간은 여러분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시간입니다. 우리 가운데 아직 한 분이라도 온전히 주님께 나오지 못한 분 계시면 이 시간 오십시오. 이 시간 죄를 온전히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아와 주님의 제자가 되세요.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주님께 나아오세요.
1.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 부르시네 부르시네
사랑의 햇빛을 왜 버리고 점점 더 멀리가나
지금오라 지금오라 자비한 주께로 지금 곧 나아오라
2. 고달파 지친자 쉬라시네 쉬라시네 쉬라시네
무거운 짐진자 다나오라 쉬게 해 주시리라
3. 주께서 지금도 기다리네 기다리네 기다리네
죄짐을 가지고 다나오라 어서 주 앞에 오라
4. 주님의 소리를 들어보라 들어보라 들어보라
그 이름 믿는자 복받으리 어서 곧 일어나라
박조준 목사
웨이크사이버신학원 명예총장
www.newsforyou.kr/news/articleView.html?idxno=10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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