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1 : 1 ~ 5
그 동안 디모데전서 강해를 은혜 중에 마치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오늘부터 디모데후서를 강해하게 되었는데 디모데서는 먼저 말씀드린 대로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그가 설립한 에베소교회의 목회를 맡기면서 목회자에게 필요한 여러가지 말씀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목회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한결같이 필요한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디모데후서의 서론에 속하는 부분인데 사도 바울은 어느 편지를 쓰던지 먼저 인사하는 부분에서 자기 자신이 사도된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사도된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에서는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요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것은 내가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말한 것처럼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안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경륜 가운데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는 대답하고 나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요 예수 믿는 사람들을 그렇게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면 쫓아가서 괴롭혔습니다. 다메섹에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사울은 대제사장으로부터 공문을 받아 가지고 다 잡아 오려고 살기 등등해서 달려가다가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습니까? 그때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고 완전히 변했습니다.
그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는 일에 앞장을 섰던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순교하게 되었을 때 사울은 스데반이 죽어 마땅하다고 가편투표를 했습니다. 이렇던 사울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후 완전히 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그리스도를 그 중심에 모시면 변하여 새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그가 바울이 된 후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선언하게 된 것입니다. 이 선언 그대로 그리스도를 핍박하던 사울이 완전히 변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바울이 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변했습니다. 그의 변화 후의 생애를 보면 그리스도 때문에 당한 고난이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8절 이하에 그가 당한 고난을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절 이하에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했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했습니다.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을 살았습니다. 주변에서 그를 아는 사람들이 바울을 향해서 뭐랬어요. “저의 많은 학문이 저를 미치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미치지 아니하고야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래요. 바울은 미쳤습니다. 예수에 미쳤습니다. 돈에 미치고, 여자에 미치고 권력에 미치고, 세상 향락에 미친것이 아니라 예수에게 미쳤습니다. 그래서 그의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사명을 맡은 그는 생명을 걸고 열심히 전파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2절 이하로 보세요.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위해서 최후까지 최선을 다 한 사람입니다. 나중에 생각하겠습니다만 디모데후서 4장에 보면 이런 대목의 말씀이 나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들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바울은 말하자면 인생을 승리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성공한 사람입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이처럼 후회 없이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게, 감격스럽게 맞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와같은 하나님의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된 바울은 이 복음의 횃불, 이 복음의 바턴을 그의 믿음의 아들인 젊은 종 디모데에게 넘깁니다. 세상에서 믿음의 길을 잘 달리다가 인생의 석양이 다가올 때 나를 대신해서 바턴을 이어 받아 계속 달려 주리 사람이 있다면 이보다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도 다 그와 같은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바울이 복음의 바턴, 횃불을 넘겨주는 디모데는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 주신 말씀에서 디모데의 단면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3절 이하에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청년 디모데, 하나님의 사람 디모데, 바울의 믿음의 아들 디모데는 한마디로 거짓 없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믿음에도 두 가지가 있어요. 거짓없는 믿음이 있고 거짓 믿음이 있어요. 거짓 믿음은 행함이 없는 믿음, 죽은 믿음을 말하고 거짓없는 믿음은 참 믿음, 행함이 있는 믿음, 그러니까 산 믿음을 말합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11장 1절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을 아직 가지지 못했지만 가진 것처럼, 내가 보지 못했지만 본 것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라는 제자는 다시 사신 예수님을 만나 뵙고 기뻐하며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우리는 다시 사신 예수님을 만나 뵈었다”고 증거하고 다른 제자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마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열심히 말하면 말 할 수록 오히려 의심이 더 생기고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들이 아무리 열심히 말해도 나는 내가 직접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뵙고 그 손바닥의 못자국 그 옆구리의 창자국을 만져 보기 전에는 믿을 수가 없다고 실증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드레를 지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모인 그 자리에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그때는 도마도 같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강을 비신 후에 도마를 불러서 “네 손가락을 이리 내 밀어 내 손을 모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의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셨습니다. 그때 도마는 예수님의 손바닥, 예수님의 옆구리를 만져보고 그 자국을 확인한 후에 “나의 주시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도마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 말씀대로 보지 못하고도 믿는 복된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디모데의 거짓 없는 믿음은 어디서 왔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 5절에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했습니다. 디모데는 어머니와 외조모가 가지고 있던 신앙을 이어받았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의 대상에게 내 삶 전폭을 맡기는 것입니다. 전적인 신뢰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 그를 온전히 신뢰하고 맡기고 의지하기 때문에 그 믿음에 의해서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축복은 정비례합니다. 큰 믿음 가지면 큰 축복 받고 작은 믿음 가지면 작은 축복받고 아무 믿음 없으면 아무 축복도 받지 못합니다. 믿음대로 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자기암시라고 말합니다. 된다 된다 된다 하고 믿으면 되고, 안된다 안된다 안된다 하고 믿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소위 자기 암시 정도가 아닙니다.
능력의 주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능치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같은 예수님을 믿지만 그 믿음의 크기 여하에 따라서 그 삶이 완전히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도 큰 믿음의 소유자에게는 칭찬을 했습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하셨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작은 사람에게는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여러분, 큰 믿음 가지셔서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으시고 믿음대로 이루어지는 축복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어떤 축복을 받습니까?
1. 담대하게 삽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을 때 그는 걱정이 되고 두려운 생각마저 들어서 하나님께 사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말씀 “가라, 모세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했습니다.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초행길을, 혼자도 아니고 이스라엘 전 민족을 이끌고 간다는 것이 그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 일입니까? 식량이 보장된 것도 아닙니다. 마실 물이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원수들이 노리고 있을 것이 뻔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믿는 모세는 장래 일을 알지 못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의 강한 팔에 붙들려 가는 어린애는 주위환경이 아무리 캄캄하고 험하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믿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의 영도를 맡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꼭 믿습니까? 그러면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담대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이사야 41장 10절 말씀 기억하세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는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두려워 할 필요가 무엇입니까?
이 말은 믿음으로 살면 어려운 일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도 환난과 역경에 직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환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승리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사람은 어떤 환경 조건 속에서도 담대하게 삽니다.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도 우리 믿음의 선배처럼 믿음으로 살아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도 담대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2. 적극적으로 삽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무슨 일을 당하던지 그것을 어떤 눈으로 보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무슨 일을 당하던지 소극적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봅니다. 그러므로 ‘안된다. 못한다. 끝났다. 절망이다. 망했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그 얼굴을 찡그리고 울상이고 시꺼멓게 되어서 다닙니다. 왜요? 믿음이 없어서 그럽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범사에 적극적으로 삽니다. 왜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음 믿음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시느니라”는 말씀대로 범사에 적극적으로 삽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도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주어진 문제를 오히려 축복과 승리의 기회로 삼습니다. 여러분, 로마서 8장 28절 말씀 꼭 기억하시고 그 말씀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악을 선으로 바꾸십니다. 무슨 일에든지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밝은 면을 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삽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어두운 면만을 봅니다. 그러므로 한숨과 탄식 속에서 불행하게 삽니다.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사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적극적인 사람에게 하나님은 일을 맡기십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일을 소극적인 사람에게 맡기셨습니까? 아니면 적극적인 사람에게 맡기셨습니까? 믿음 없는 사람을 시키셨습니까? 아니면 믿음 있는 사람을 시키셨습니까?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일을 부탁하실 때 적극적인 사람에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사명따라 삽니다.
히브리서 11장 24절에 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좌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모세가 육신을 생각했다면 바로의 공주의 양자의 위치에서 애굽 궁전에 머물러 있으면서 귀족으로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것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심령은 이스라엘 민족을 노예의 자리에서 해방시키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소리쳤습니다. 모세는 육신과 영혼의 갈등 속에서 헤매다가 영혼의 부르짖음을 따라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 고난의 길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의 사명을 위해 나섰습니다.
사명은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명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이 나더러 하라고 심부름을 시킨 것이다’ 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서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을 따라 사는 사람의 길이 어렵고 힘이 들어도 거기에 의미가 있고 보람이 있고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데 무슨 일을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맡은 일을 사명감을 가지고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명감 가지고 일하는 사람은 그 일에 열중할 수가 있습니다. 바울이 어떻게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서 미칠 정도로 일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시키신 심부름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실 때 의미 없이 목적 없이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향하신 소원과 기대가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순종합니다.
믿음과 순종을 한 수레의 두 바퀴와 같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순종하지 않는 것은 거짓 믿음입니다. 이 성경책에는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성경이 역사책은 아닙니다. 성경에는 많은 아름다운 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성경이 시집은 아닙니다. 성경에는 많은 편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성경이 편지 책은 아닙니다. 성경책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책입니다. 성경은 과학책도 아닙니다. 성경은 과학을 초월한 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우리의 이성과 경험에 맞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이성과 경험을 초월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받아들여 순종해야 하는 믿음의 책입니다.
우리가 주일 아침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생각했습니다. 그는 복의 근원이요 믿음의 조상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그런 훌륭한 믿음으로 순종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도 우리처럼 신앙 문제 때문에 많은 갈등을 하고 살아가는 동안에 실수도 하고 어려움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갈등과 몸부림을 통해서 마침내 우리의 믿음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장 어려운 시험인 100살에 낳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 온전한 순종이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쓰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온전히 드려야 하나님이 쓰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데 그물을 던졌더니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심부름하는 사람들이 예수님 말씀을 순종해서 돌 항아리에 물을 가득가득 채웠고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갔다주라 해서 갔다 주었더니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주님께 믿음으로 순종하면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5. 승리합니다.
구약 성경을 읽어보면 잊을 수 없는 인상 깊은 사건 하나가 있습니다 온 이스라엘 군대가 벌벌 떠는 적장 블레셋 사람 골리앗을 전쟁 경험도 없는 목동 출신 어린 소년 다윗이 쳐죽여 승리를 거두게 되고 일약 민족의 영웅이 된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쳐서 승리한 비결이 무엇입니까? 골리앗 보다 키가 컸습니까? 무기가 우세했습니까? 전쟁 경험이 많았습니까? 육신적으로 말하면 다윗은 골리앗에 비해 열세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던진 물매돌 하나로 기세도 당당한 골리앗을 쳐죽였습니다. 무엇이 다윗으로 하여금 골리앗을 이기게 했습니까?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해서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37절에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말씀했습니다.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 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주 믿는 사람 일어나 다 힘을 합하여
이 세상 모든 마귀를 다쳐서 멸하세
저 앞에 오는 적군을 다 싸워 이기라
주 예수 믿는 힘으로 온 세상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오 하나님, 우리에게도 거짓 없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담대하게 살게 하시고 적극적으로 살게 하시고 사명 따라 살게 하시고 순종하며 살게 하시고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박조준 목사
웨이크사이버신학원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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