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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조준목사 설교

[박조준목사] 지도자가 되려면 - 뉴스포유

디모데전서 4 : 6 ~ 1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는 다양합니다. 어떤 분은 전도의 은사를 받아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설득력 있게 말씀을 전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교회로 인도하는 그런 탁월한 영적 은사를 받은 분이 계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특별한 은사를 받은 분만 전도하고 말씀하지는 않습니다. 전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내려진 명령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1-2절을 보세요.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했습니다.

가르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비단 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 전담 사역자들에게만 주어진 말씀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진리를 가르쳐야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합니까? 오늘 주신 말씀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1.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했습니다.

지도자는 경건의 훈련에 태만하게 되면 그는 지도자로서의 자질은 상실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서 바을은 디모데에세 지도자로서의 영적인 훈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영적 훈련을 받아야 합니까? 어디에 도달하기 위해서 입니까? 오늘 주신 말씀 7절을 보세요.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했습니다. 훈련의 목적은 경건에 이르기 위한 영적 훈련인 것입니다.

경건이 무엇입니까? 영어로는 godliners라고 말하는데 하나님의 성품과 인간을 닮은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가장 본질적인 측면을 말합니다. 그것은 외적인 면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고 내적인 면 다시 말하면 도덕적이고 인격적인 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한 존재로, 하나님이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하나님이 의로우신 것처럼 의를 사모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하여 타락하므로 우리 속에 있던 하나님의 형상이 깨졌습니다. 칼빈의 말대로 하면 인간은 완전 타락했습니다. 깨어지고 부서진 거울처럼 되어 버려 하나님의 형상을 찾을 수 없게끔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을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우리 속에 깨어져 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이 다시 회복된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가장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가 죄사함 받고 구원받는 그날부터 주님을 닮아가는 일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예수님과 같은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면 하나님을 본 것이나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예수님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닮아간다는 말을 주님을 닮아간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는 일은 언제 완성됩니까? 예수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실 때입니다.

우리 기독교에 3대 교리가 있는데 ‘창조의 교리’와 ‘구속의 교리’ 그리고 ‘재림의 교리’입니다. 이 세 가지 교리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인간이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교제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닮은 존재로서 없어서 안될 절대적인 요소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자유입니다. 하나님은 자유 하십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도 자유의지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자유의 남용은 범죄를 초래했고 이 죄가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우리는 주님을 통해서 다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 다시 오실 때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건을 연습한다’는 말은 바로 주님을 닮아 가는 훈련을 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닮아가기 위해서 자신을 훈련시키는 과정을 땀과 노력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단을 요청합니다.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연습이란 말은 운동선수들이 사용하는 말입니다. 이 말이 여기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기 위해서 얼마나 구체적으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복종시키려고 애쓰며 노력하고 있습니까?

바울이 쓴 편지를 보면 운동에 대한 표현들이 많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가령 고린도전서 9장 24절 이하에 보면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마치 달리기 경주와 같은 것으로 비교하고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했습니다.

경주자가 훈련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무엇입니까? 절제입니다. 이 절제의 표현이 마지막 절에서는 더 분명하게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라” 했습니다.

권투 선수들이 링에 오르기 전에 몇 달 전부터 체중 조절을 위해서 얼마나 애씁니까. 먹고 싶은 것 안 먹고 식사를 조절하며 운동으로 자기 몸을 단련시키고 기량을 연마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적어도 이와같은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1. 신자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신자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신자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2. 사랑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사랑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사랑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3. 거룩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거룩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거룩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4. 예수닮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예수닮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예수닮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오늘 주신 말씀을 보면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하면서 유념한 사항을 말씀합니다. ‘망녕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옛날 히브리어에서는 나이든 여자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유익하지 못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계급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전혀 유익하지 못한 잡담이나 음담패설을 늘어 놓는 것은 경건에 커다란 방해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건을 추구하는 사람은 망녕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자신을 지켜야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언어라는 것은 관심의 표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많이 하나 하는 것을 보게 되면 그의 사람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우리가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우리의 대화를 통해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입술로 표현되고 있는 전혀 필요 없고 쓸데없는 이야기들은 우리의 관심이 그런 것에 쏠리고 있다는 정직한 자기 고백 일 것입니다. 경건을 지향하는 사람마다 이러한 것에서 우리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경건을 추구해 나가기 위해서는 경건의 유익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지도자의 영적인 경건 연습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무엇과 비교했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 8절을 보면 육체의 연습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육체의 연습이 쉽습니까? 경험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육체의 연습이 아주 어렵습니다. 몸무게를 줄이는 일이 쉽습니까? 피나는 노력과 집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어려운 연습을 꾸준히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해서 매일 아침 일찍 달리기를 하시는 분들을 보세요. 그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힘이 드는 일입니다. 더구나 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해야 하는 이 훈련이 보통 노력이 아닙니다.

이처럼 육체의 연습을 할 때 가져올 유익을 생각하면서 그 고된 훈련을 기꺼이 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육체의 연습에도 유익이 있습니다. 몸이 건강해 집니다. 몸이 가벼워집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육체의 연습을 해서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잘 간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몸이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령의 전임을 고백하고 이 몸의 귀함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것이면 몸에 대한 청지기적 관리도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육체의 연습이 주는 유익은 경건의 연습이 주는 유익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다”고 말했습니다. 육체의 연습은 육체에만 유익할는지 모르지만 경건은 범사에 유익합니다.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고 했습니다. 육체의 연습은 우리가 육신을 쓰고 살아있는 동안에만 유익합니다. 그러나 경건에 이르는 연습은 이 세상에서 뿐만이 아니라 오는 세상에까지 그 유익이 이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을 닮아가려는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얻은 덕목과 경건의 모습은 버리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이 육신을 버려져도 우리의 사람됨을 영원까지 보존되기 때문에 경건의 유익은 금생 뿐만 아니라 내생까지 이른다고 한 것입니다.

이처럼 영적인 연습의 결과가 영원까지 미친다고 할 것이면 왜 우리가 영적인 연습을 게을리 할까요?

우리가 육체를 관리하고 건강을 조심하는 만큼의 노력도 영적인 연습에 투자하지 않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합니까?

오늘 주신 말씀 10절을 보세요.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진력’이라는 말은 역시 운동선수에게 적용되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대로 바울 당시에 헬라의 문화가 유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헬라의 문화는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운동에 대한 열망과 집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헬라 문화가 보급되는 곳마다 체육관이 세워졌고 이 때문에 체육에 대한 용어가 많이 쓰여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만일에 그리스도인들이 저 사람들이 자기 육체를 위해서 열심으로 훈련하는 것처럼 영적인 연습과 유익을 추구한다고 하면 저들의 인격과 영성이 얼마나 크게 달라질까” 하는 것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기 ‘진력’이라는 말은 기진맥진해서 쓰러질 때까지 힘을 다하여 수고하고 운동하는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다 소모하고 마지막에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을 닮아 가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복종시키는 훈련도 이렇게까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쓰임을 받아 말씀의 사역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살아가기를 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께서는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참된 선지자는 진정한 권위를 추구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진정한 권위’라는 말을 하게 된 것은 거짓된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권위가 필요합니다. 귄위가 없는 지도자는 바로 할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젊은 지도자의 경우 권위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실제로 디모데에게 개인적인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디모데는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 12절을 보세요.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라”고 말씀했습니다. 젊은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받기가 쉽습니다. 지도자인 경우에 더욱 그렇습니다. 지도자가 업신여김을 받게 되면 그의 지도력은 이미 생명이 다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어깨에 힘을 주라”하지 않았습니다. 권위를 가지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그 권위가 어디에 있습니까?

도덕적이고 인격적인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도덕적인 순결성과 인격적인 성실성이 있을 때 권위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말에 책임지는 생활, 말과 생활이 일치되는 삶,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삶, 도덕적으로 순결한 삶 이것이 결국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부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 지도자가 되려면 도덕적으로 순결하고 인격적으로 성실한 데가 있어야 권위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본이 되어야 권위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라고 말씀했습니다. 지도자가 모본이 되면 사람들은 자연히 그를 따르고 싶어합니다. 거기서 자연스럽게 지도력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적인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가르침을 통한 권위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가르치라’는 말을 강조했습니다. 지도자가 주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가르침을 베풀 때 그리고 그 가르침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고 그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때 그는 자연히 권위를 갖게 될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할 책임 앞에서 성실할 때 그리고 자신의 삶에 책임질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연히 지도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도자는 성숙해져야 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15절에 보세요.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며, 너희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우리가 지도자로 세움을 입었다고 해서 그가 완전한 사람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완전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또한 우리는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도자가 완전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진보하고 성숙하는 것을 증명할 수는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도자의 삶은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야 합니다. 믿음의 진보와 인격의 진보가 그의 삶에 나타나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도자는 가르치는 사역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삶에서 책임지는 면에서도 진보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진보’라는 말은 운동하는데서 사용하는 말이면서 군대의 용어이기도 합니다. 선봉자가 장애물을 헤치고 나아가는 모습을 말합니다. 이렇게 지도자가 장애물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면 어떻게 됩니까? 뒤따르는 사람들이 잘 따라 올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지도자의 형상과 지도자의 성숙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지도자의 성숙은 평신도 자신의 성숙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한 교회는 그 교회의 지도자의 교회 지도자에 대한 엄중한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행전 3장 6절에 보아도 베드로는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라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돈은 없어도 권력은 없어도 자식은 업어도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는 그래서 걷기도 하고 뛰기고 하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계속 성숙해져야 합니다. 지도자의 성숙이 중단될 때 성도의 성숙도 멈출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도자의 중요한 책임이요 동시에 지도자를 향한 도전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마지막 16절을 보십시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지도자는 잘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가르침이 인격의 산물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가르치느냐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가르치는 나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지도자들이 자기 점검의 시간마다 끊임없이 물어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구원받았다고 하면 죄로부터의 구원, 죄사함을 의미합니다. 사망과 심판과 지옥으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이 구원은 이미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성취된 구원입니다. (요 5:24)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죄악의 세력과 싸우는 일을 끝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나를 넘어지게 만들고 약하게 만들고 불경건하게 만들고 나를 오염시키는 이 죄의 세력과의 싸움은 아직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와의 싸움에서의 구원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언제 우리는 죄악의 세력에서 완전히 자유하게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 다시 오실 때입니다. 그때 우리는 죄를 다시 지을 수 없는 인간으로 완전히 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다시 오실 때 우리는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를 과거적 구원, 현재적 구원, 그리고 미래적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또는 칭의의 구원, 성화의 구원 그리고 영화의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주신 말씀에서 언급한 구원은 두 번째 구원의 개념입니다.

지도자가 되려면 경건의 훈련을 쌓는 사람이어야 하고 진정한 의미의 권위를 추구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기 성숙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남이 있는 세월을 정말 주님 앞에 책임질 수 있는 인견과 신앙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 자신을 더욱 훈련하게 도와주세요.”

훈련이 생각만 가지고 되는 것 아닙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결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순간 순간 의지해야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고 무릎 꿇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장중에 붙들린 일꾼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조준 목사
웨이크사이버신학원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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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조준목사] 지도자가 되려면 - 뉴스포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는 다양합니다. 어떤 분은 전도의 은사를 받아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설득력 있게 말씀을 전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해서 교회로 인도하는 그런 탁월한 영적 은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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