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3 : 14 ~ 16
여러분께서 기도하여 주셔서 이번 시에틀 연합 성회를 은혜 중에 끝마치고 돌아오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저는 어디에 가서 말씀을 전하나 우리 갈보리 믿음의 식구들이 간절하게 기도해 주시는 것을 실제로 체험합니다. 지난 세기의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요 목회자였던 햘스 스펄젼 목사가 승리적인 목회를 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온 성도들이 그 목사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기도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 동안도 저를 위해 많이 기도해 주셨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그 동안 디모데전서 3장을 읽어 내려가면서 감독의 직분을 맡으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나, 그리고 집사의 직분 맡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데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집과 그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교회에 대하여 여러가지 상징적인 표현들이 있습니다. 몸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집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서는 하나님의 교회를 집으로 기둥과 터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5절을 보세요.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라고 말씀했습니다. 교회에 대하여 여러가지 상징적인 표현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표현은 ‘집’이라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집처럼 우리에게 포근하고 다정한 의미를 주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9절에 보면 바울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부터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어 주님 안에 들어온 모든 이방 사람들에게 모든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권속이란 말은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우리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고 성령 안에서 거듭날 때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주시는 구속의 증거 가운데 하나요 우리의 입술을 열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감사 감격스럽기 이를 데가 없는 것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내가 중생하고 구원받는 순간 나와 같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같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모두가 나의 형제 자매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는 목사님, 전도사님, 권사님, 집사님과 같이 사역을 위해서 붙여진 호칭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근원적으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두가 형제요 자매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한 권속, 한 가족입니다. 어떤 이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손자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1절에는 지도자들을 가리켜서 어떤 사람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여기서 ‘맡은 자’라는 말은 ‘청지기’라는 말입니다. 옛날 부잣집에서는 집안 살림을 맡아서 하는 청지기를 고용했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말하자면 하나님의 집의 청지기입니다. 근원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입니까!
두시간 전에 생각한 바 있는 디모데전서 3장 4절에 보면 감독의 자격을 말하면서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중에 하는 자라야 할지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집도 잘 다스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성장해 가기 위해서 우리가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우리가 교회 안에서 얼마만큼 가족적인 영성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성도들의 수가 적을 때 우리는 자연히 가족 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서로가 알고 지내니까 안부도 묻게 되고 관심도 더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식구가 많다 보면 더구나 우리 교회처럼 이렇게 여러 곳에 나뉘어서 그것도 여러 번 예배를 드리게 되다 보니까 한 자리에 만나 뵙는 기회는 10년을 다녀도 거의 없는 형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요 고민 중에 하나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성장하는 모든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고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가 가족의 영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작은 모임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전체적으로 모일 때는 가족적인 분위기를 느끼기가 어렵지만 여러 작은 모임을 통해서 깊이 있는 교제를 나누게 되면 교회가 계속 성장해도 여전히 가족의 영상은 유지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 교회에서 여러분에게 어느 단체든지 꼭 가입하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작은 단체에 가입해서 함께 선교하고 함께 봉사하다 보면 여기서 친교가 유지되고 가족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본질을 계속 지켜 나가기 위해서 가족 의식을 창조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책임있는 사람으로 일하나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교회가 커질수록 문제되는 것이 구경꾼, 손님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작은 교회에서는 식구가 많지 않으니까 서로가 잘 알 뿐더러 책임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큰 교회에서는 내가 책임 없이 지내도 다른 사람이 하니까 나는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구경꾼이 되고 손님 노릇을 하게 됩니다. 아마 우리 교회에 나오시는 분 가운데 적지 않은 분이 책임지는 것이 싫어서 그것이 부담스러워서 아무 책임지지 않고 신앙 생활하시기 위해서 나오시는 분도 계시리라 짐작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어디 가나 책임 의식을 가지고 손님이 아니라 주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책임지고 주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책임 있는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책임 있는 주인 의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주인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국가에서도 주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결코 작은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한 장소에서 모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집집마다 그들이 모여서 예배드리고 교제하면서 ‘한 교회에 속했다는 의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 것으로 사도행전을 통해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책임 있는 회원으로서 가족의 영성을 가지고 이 집의 모든 일을 책임있게 감당하는 청지기의 사역 앞에 마음을 열 때 우리 교회는 더욱 아름다운 하나님의 집을 만들어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목사입니까? 아닙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교회의 지도력은 누가 잡고 있느냐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발상 자체가 임 주님의 말씀을 떠나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한분 하나님이십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교회의 참 주인 도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지도자와 모든 평신도가 함께 겸손히 무릎을 꿇을 때 비로소 우리 교회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다운 교회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15절을 보세요.
“만일 내가 지체하면 어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라고 말씀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살아계신 하나님”이란 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바울이 이 말씀을 특별히 강조했을까요?
지금 바울이 편지를 쓰고 있는 대상은 디모데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떠나간 후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에베소에는 그 도시를 대표할 만한 유명한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데미 신전인데, 이것은 그 당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불리던 신전이었습니다. 그 건물은 다이아나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매우 아름다운 신전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27절 이하를 보면.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에베소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과 충돌하게 되는 배경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이 영업만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권각도 경홀히 여김이 되고 온 아시아의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분이 가득하여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하니 온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를 잡아 가지고...”
여기 나오는 아데미의 전각이 바로 다이아나 신전입니다. 에베소 사람들이 아주 자랑으로 여기던 이 신전 안에는 127개의 기둥이 있었습니다. 기둥도 조그마한 기둥이 아니라 대리석으로 된 큰 기둥입니다. 그리고 그 바닥은 금으로 입혀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웅장하고 훌륭한 건물인가 상상해 보십시오. 에베소 사람들은 이 신전을 자기들의 큰 자랑거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도시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곳을 떠나면서 후임 목회자로 디모데를 임명한 것입니다. 디모데는 이런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이 우상의 신전과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다소가 위축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데미 신전이 이렇게 크고 위엄이 있으면 무엇합니까? 이 신전의 주인은 죽은 신입니다. 아마 사도 바울은 이 편지를 쓰면서 죽은 신을 모시고 있는 아데미 신전을 생각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상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어도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절대로 위축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죽은 신이 아니라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15절의 고백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에서 주님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특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의 축복을 확인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언제나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교회가 교회 구실을 바로 할 수가 없습니다. 두 가지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생명과 조직입니다.
우리 몸에 생명이 없으면 시신입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몸에 생명이 있다 해도 그것이 권교하게 조직되지 않으면 그 생명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교회를 표현할 때 늘 조직만을 강조합니다. 물론 조직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밖으로 드러나는 조직만을 강조하고 생명이 상실되면 그것은 형상만 갖춘 죽은 몸입니다. 반면에 교회의 생명만을 강조하고 조직을 아주 무시하면 그 생명이 자랄 수가 없습니다.
생명과 조직은 둘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물론 생명입니다. 왜 교회를 살아있는 유기체라고 말합니까?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에 의해서 주관되고 지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얼마나 더 생명력 있는 교회로 성장해 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교회를 구성하는 한사람 한사람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하고 신뢰하는가, 그리고 얼마나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루어 나가는가 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교회의 진정한 주인이 되게 하므로 지도자나 평신도나 모두가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대하며 그분께 지혜와 지도력을 구할 때 교회는 교회로서의 역할을 바로 감당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15절 하반 절을 보세요.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교회는 사명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기둥은 지붕을 받쳐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둥을 받치고 있는 것은 터입니다. 바울이 이 말씀을 하면서 아데미 신전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교회의 진정한 터와 기둥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진리입니다. 터가 기둥을 받치고 기둥이 지붕을 받치는 것처럼 교회는 진리를 받치는 것입니다. 교회는 진리의 청지기입니다. 교회는 진리 위에 세워졌고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교회 지도자들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 다음에 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은 아주 의미 있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은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고서 교회를 섬길 때 ‘내가 지금 진리를 증거하고 있는가’하는 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먼저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진리를 소유하고 있지 못한 교회는 이미 죽은 것입니다. 교회는 진리를 알고 소유해야 할뿐만 아니라 이 진리를 그 교회 안에 있는 식구들에게 가르치고 그 삶에 적용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나의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러나 그냥 함께 살기 위해서만 있는 집은 아닙니다. 교회는 진리를 소유하고 진리 안에서 성숙하고, 진리를 증거하고, 그래서 모든 사람이 진리를 따라 살도록 하기 위한 진리의 집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16절을 보십시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외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 올리우셨음이니라”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진리가 무엇입니까? 진리는 추상적이고 막연한 것이 아니라 한 인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진리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비밀이십니다. 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가장 놀라운 비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 비밀을 네 가지 특성으로 말씀했습니다.
첫째로 이 비밀은 큰 비밀입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했습니다. 성경 기자들은 정말 중요하다는 의미로 ‘크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여기서도 ‘크도다 비밀이여’한 것은 너무 너무 중요하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입니다.
가령 에베소서 5장에서 남편과 아내가 합하여 한 몸이 되는 비밀을 그리스도와 교회가 연합하여 한 몸이 되는 비밀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30,31절을 보세요.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그 다음에 “이 비밀이 크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32절에 보면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했습니다.
이 비밀이 크다는 것은 너무 너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남편과 아내와의 연합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부부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부부의 연합입니다.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큰 비밀입니다. 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놀라운 비밀, 이 비밀은 아주 크고 위대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이 비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둘째로, 이 비밀은 경건의 비밀입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경건하다는 말은 하나님께 속한 것, 하나님 닮은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경건의 표준은 이러이러한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께 속해 있나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서는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의미를 더욱 강조한 것 같습니다. 이 비밀은 사람에게 속한 비밀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비밀입니다.
왜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비밀입니까?
이것은 하나님 편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던 것을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계시라고 하는데 비슷한 의미입니다. 계시라는 말의 뜻은 ‘뚜껑을 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던 것을 하나님께서 뚜껑을 열어 보여 주신 것이 계시입니다.
사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서 공개하시고 우리에게 보여주신 비밀입니다. 하나님은 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시고 사람을 변화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이 비밀이신 그리스도를 전하고 가르치는 사명을 교회에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위대한 교회의 재산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가 이 비밀을 얼마나 드러내고 있습니까? 얼마나 이 비밀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교회의 생명을 결정한다고 말해도 될 것입니다.
셋째로 이 비밀은 인정된 비밀입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가 교회의 가장 위대한 비밀이고 하나님께 속한 가장 놀라운 비밀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 아닙니까? 하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놀라운 비밀입니까?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놀라운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친히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는데도 예수님을 만나 본 사람들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설교하셨는데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민족이 어느 민족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유대 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믿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들로 믿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 건너가야 할 가장 큰 강이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깨달으면 다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라는 사실, 이 엄청난 사실을 체험한 사람에게는 이것이 인정된 비밀이지만 세상은 얼마나 이 비밀에 눈이 멀어 있습니까?
넷째로 이 비밀은 한 인격의 비밀입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이 비밀은 숨겨 둔 보물이 아닙니다. 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비밀 그것은 인격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는 육신으로 나타나신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함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을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 올리우셨음이니라”했습니다.
바로 이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영광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나타나신바 되셨습니다. 그것이 크리스마스입니다. 그리스도는 영의로 의롭다 함을 입으셨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시므로 성령에 의해서 의롭다 함을 입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천사에게 보이셨습니다. 천사들도 예수 그리스도가 높아지심에 대한 증인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만국에 전파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후 세상에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영광 가운데 올리우셨습니다. 주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우리는 바로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는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고자 하십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참으로 주님께 봉사할 때 우리는 오늘 살아계신 그리스도가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박조준 목사
웨이크사이버신학원 명예총장
www.newsforyou.kr/news/articleView.html?idxno=10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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