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인이 오늘 본문에 등장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40여년 동안 길가에 앉아 구걸하며 사는 딱한 형편입니다. 단 하나 희망이 있다면 누군가 측은히 여겨 던져주는 동전 한 닢뿐입니다. 이 사람을 더욱 암울하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었습니다. 그를 불쌍히 여기기보다 누구의 죄 때문에 앞을 보지 못하느냐고 비난하며 서로 논쟁할 때마다 그의 마음은 무너졌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 사람 곁을 지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대화를 오갔습니다.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2~3절)
예수님이 그의 마음을 이해해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어 그것으로 진흙을 만들어 앞 못 보는 사람의 눈에 발랐습니다. 그렇게 하신 뒤 “실로암 연못으로 가 씻으라” 하셨습니다. 진흙을 개는 행위는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을 연상시킵니다. 다시 앞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이 담긴 메시지였던 셈입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치유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순종의 의미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만 따라 아픔을 씻어 버리고 영적으로도 치유되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은 삶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분입니다. 갈 길을 몰라 방황하는 우리를 깨워 사명의 길을 걷게 하시고 병든 자를 치유하신 뒤 주님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우리를 건져주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순종하는 그 자리에 언제나 예수님의 기적이 임합니다.
실로암은 예루살렘 동남쪽에 있는 옥외 저수지입니다. 그 물이 예루살렘 성 안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연못으로 가기 위해서는 33개의 계단을 내려가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람은 앞을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에게 스스로 내려가라 하셨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예수님도 낮은 곳으로 오셨습니다.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것부터 이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창녀와 세리, 죄인의 친구입니다. 소외당하는 사람을 항상 가까이에 두셨습니다. 돌아가실 때도 강도와 똑같은 취급을 받으며 조롱 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높은 권세를 누릴 수 있었지만 낮은 곳에 계셨습니다.
실로암은 씻는 곳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실로암까지 내려오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씻지는 않았습니다. 주님은 실로암 못으로 가 씻으라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에 나오지만, 주님의 보혈을 의지해 죄를 씻으려 하지 않습니다. 앞 못 보는 사람으로 왔다 그 상태로 돌아가는 셈입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도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찾는 공간이 돼야 합니다. 버림받고 약하고 소망을 잃고 실패했으며 좌절해서 갈 곳 없는 이들이 찾아와 씻음 받는 공간이 돼야 합니다.
앞 못 보는 사람도 실로암으로 내려갈 때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었지만, 돌아올 때는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실로암을 다녀간 이가 받았던 것과 같은 은혜를 체험하시길 바라고 축원합니다.
김성이 목사(웨이크사이버신학원 교수)
◇김성이 목사는 이화여대 교수와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최근 국제독립교회연합회(WAIC)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뒤 웨이크사이버신학원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WAIC에 속한 웨이크사이버신학원은 ‘교회를 교회다운 교회로 회복하자’ 기치 아래 설립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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