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조준목사 설교

[박조준목사] 그리스도인의 사명 - 뉴스포유

사도행전 1:1~14

신약성경의 사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어떻게 훈련시키셨는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구속 사업은 십자가상에서 죽으심과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심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사업은 택하신 사도들의 훈련에 초점을 두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끝나려 할 즈음,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그들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나아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모든 나라로 제자를 삼아야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행전은 주님께서 명하신 사명을 사도들이 어떻게 성취해 나아갔는가 하는 그 과정을 성령께서 기록하신 책입니다.

이번에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어 내려가면서 한 절 한 절 해석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사도들이 일했던 그 당시의 역사와 환경에 대하여 연구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사도들이 어떻게 전도하였으며, 어떻게 초신자들을 도와서 믿음 안에 굳건히 설 수 있게 하였는지,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미래의 일꾼들을 어떻게 길러 냈는지, 그리고 사도들이 장차 그들의 책임을 계승할 지도자를 어떻게 훈련시켰는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오늘날 그리스도를 전파할 우리들이 행하여야 할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은 살아서 씩씩하게 움직이며 전진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명상록이 아니라 그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산 속에서 가만히 앉아 도를 닦으며 명상에 잠겨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사도들은 언제나 눈을 들어 추수 때가 되어 무르익은 밭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조상들이 팔레스틴에서 평안히 앉아 있는 것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게으르고 꿈에 잠겨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교실에 앉아서 생각하며 이론을 따지고 있는 것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사명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일어나 행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기독교는 이론의 종교가 아니라 행함의 종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

사도들은 이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늘 걷고, 행하고, 기도하고, 전파하고, 일을 했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사도들을 이처럼 행동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까? 3년 동안 그들은 행동하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이셨던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였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오늘 본문 사도행전 1장 1절에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는 잘못된 신앙을 지적하고 사람들을 돌이켜 인간 기준의 가치관과는 전혀 다르고 새로운 길인, 희생과 고난과 역경의 길로 인도하는 말씀의 길이십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나를 따르려면 너 자신을 부인하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고, 제자들은 기꺼이 핍박을 향해 행군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죽은 자를 일으키셨습니다. 요란한 바다를 잔잔케 하셨습니다. 귀신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어느 선생과 비교를 할 수 없는 놀라운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고 실천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는 예리한 통찰력을 가지셨고, 말씀은 정확하셨고, 범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을 구원하시는 데 얼마나 적극적이셨나를 보세요.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세리 삭개오를 구원하셨는데, 주님이 삭개오를 아시게 되신 지가 얼마나 되었습니까? 오랫동안 교제해 왔던 사람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둘째로, 개인의 가치를 중요시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1장을 읽을 때 우리는 또 다른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 첫 구절에서 우리는 데오빌로를 만납니다. 누가는 누가복음도 데오빌로에게 보내면서 그것은 그로 하여금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함”(눅 1:4)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누가는 이렇게 성경 중에 두 책을 꼭 같은 사람에게 보냈습니다. 그는 개인의 가치를 이렇게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개인이 거의 무시당하는 세상입니다. 대중이 찬양을 받고 있습니다. 무슨 모임이 있어도 얼마나 사람이 많이 모였나 하는 것으로 성공 여부를 가늠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얼마나 사람이 많이 모였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모임에서 어떤 역사가 일어났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누가는 과연 훌륭한 사도입니다.

셋째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합니다.

본문 4~5절에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예수님의 분부 중에 분명하고 정확하게 며칠 동안 기다리라고 하지 않은 것을 주의해 보세요. 예수님은 다만 “몇 날이 못 되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열흘 후에”라고 말씀하셨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들은 열흘 동안 다른 일에 정신을 쏟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열 하루째 되는 날에야 그들은 정신을 가다듬고 성령의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였을 것입니다.

더구나 감람산 위에서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했던 말을 생각해 보세요. 11절에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습니다. 이처럼 주님이 다시 오시리라는 소망이 제자들로 하여금 재림의 날을 준비하며 기다리도록 한 것입니다.

언제 재림하시느냐 하는 것은 누구도 모릅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매일매일 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오늘 밤에 오실지도 모릅니다. “속히 오리라” 했습니다.

여러분께 제 가정 이야기를 전에 드린 적이 있습니다. 제가 세 살이고 제 누이동생이 한 살 때, 그때 스물세 살이었던 제 아버님이 밤에 주무시다가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삼촌이 한 분 계셨는데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하시고 함경도 북청에 가셔서 교사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주에서 내려오는 전염병에 걸려 한 주일 동안 고생하시다가 스물여섯 살 난 청년 몸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할머님이 뜰에서 일을 하시다가 제 삼촌이 세상 떠났다는 전보를 받으시고는 우시지도 못하시고 얼굴이 하얗게 질리시더니 뜰에서 데굴데굴 구르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어린 제 마음에 “아, 우리 식구는 20대에 다 세상을 떠나는구나”하는 충격을 받았고 “나도 20대에 죽을는지 알 수 없지”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오늘 밤 만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면 어떻게 하나” 해서 매일매일 그 날을 정리하고 살아오곤 했습니다. ‘누구와 막힌 담은 없나? 오늘 밤 주님 앞에 가도 괜찮겠나?’ 그래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방 안 정돈을 하고 잠자리에 듭니다. 어디에 나가도 사무실을 다 정돈하고 나갑니다. 저는 이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감사한 것은 다른 사람과 다투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오늘까지 싸워 본 적이 없습니다. 싸울 일이 있으면 제가 집니다. 그저 내게 맡겨진 일, 제게 주신 능력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오늘이라도 다시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만큼 제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 우리의 삶의 자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바로 산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3장 2~3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예수님의 재림의 약속은 우리에게 정결한 삶을 살도록 고무시켜 주십니다.

1. 신랑 되신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등불 들고 나갈 준비 됐느냐

2. 주를 나와 맞으라는 소리 들릴 때

기뻐하며 주를 맞이할 수 있느냐

3. 항상 깨어 기도하며 거룩한 기름

준비 하지 않고 주를 맞지 못하리

4. 그날 밤에 영화로운 혼인 자리에

기뻐하며 할렐루야 찬송 부르리

(후렴) 그날 밤 그날 밤에 주님 맞을 등불이 준비됐느냐

예비하고 예비하라 우리 신랑 예수 오실 때

밝은 등불 손에 들고 기쁨으로 주를 맞겠네

넷째로,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미래에 대하여 큰 관심이 쏠려 있었습니다. “내일은 어떻게 될까? 다음 달은 어떻게 될까? 내년에는 어떻게 달라질까?”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미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제자들을 꾸짖지 아니하고 오히려 오늘의 긴급한 과제에 관심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본문 6절에,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는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쳐야 할 일, 다시 말하면 복음 증거의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다른 일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이웃에 전하고 나아가서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유대와 사마리아와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받은 바 사명을 문자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전체에 진리로 충만하게 권했습니다. 그들은 유대 땅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 다음에는 빌립을 통해서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첫 번째의 이방인 개신자 고넬료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것은 사도 베드로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는 사도 바울의 총 지휘 아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세상 끝까지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는 그냥 부르시지 않고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마가복음 3장 14절에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했습니다. 베드로를 부르실 때도 “나를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제자들을 택하시고, 그를 따르게 하시고, 배우게 하시고, 동행하게 하시고, 대화를 나누시고, 세계를 포괄하는 비전의 선봉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게로 오라” 하신 말씀의 대답은, 또한 예수님께서 명하신 “너희는 가서”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시고 주님의 제자로 삼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일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증거하기 위해서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 보세요. 하나님은 사명을 맡기실 때 그냥 맡기기만 하시고 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하느라고 허우적거리도록 내버려 두시지 아니합니다. 예수님이 동행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28장 18~20절에 주님의 분부하심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시면서 항상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권능을 받고.” 어떻게요? “성령이 임하시면” 그렇습니다. 권능을 받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결코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들으세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실 때는 사명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권능까지 함께 부여하십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믿습니까? 사도 바울도 자기의 부족을 느끼고 자신이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다”고 하면서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담대하게 그의 신앙을 간증합니다(빌 4:13).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진 가장 크고 긴급한 과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령께서 사도행전을 통해서 말씀하신 메시지입니다. “내 증인이 되라.”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은 한시도 지체할 수가 없습니다. 세계 복음화의 과제는 한가롭게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 지옥의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무덤으로 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을 영원히 잡아 넣으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의 명령은 너무 분명합니다. “내 증인이 되라.”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다섯째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장은 우리에게 너무 분명한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세계 복음화의 위대한 사명을 맡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기도하기 위해서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기도하지 아니하고 전도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아니하고 능력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기도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가룟 유다를 대신해서 다른 사도를 천거할 때도 저희들은 함께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주님의 뜻을 보여 주실 것을 간청한 것입니다. 이것이 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자들은 기도하는 가운데 말씀을 찾았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고 애썼으며,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이 그들에게 보여 주신 것을 그대로 행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사람이었으며, 기도는 주님의 일이었고, 그들로 하여금 기도 중에 결정을 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그들과 함께 복음을 전파하고 항상 하나님의 양을 양육하였습니다.

여섯째로, 하나님의 양을 돌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의 양떼를 돌보기 위해서 감독자들을 세우십니다. 추수하는 젊은 일꾼들을 이끌 수 있는 풍부한 전도의 경험과 주님께 오랫동안 봉사한 경험이 있는 연륜이 있는 감독자들, 말하자면 영적인 지도자들을 주셨습니다. 이 감독자들은 가정을 방문하며, 함께 기도하며, 잘못을 충고하며, 같이 생각을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연장자의 풍부한 체험은 전도 사업을 촉진할 것이며 젊은 일꾼들이 실패하지 않도록 도와 줄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행전 20장 28절에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지도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자기의 양떼처럼 감독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자기가 인도하는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관심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잠언 27장 23절에도 말씀했습니다.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

양떼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양떼를 보호하지 않으며 사랑하지 않고 돌보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 불충성한 것이며, 양떼에게 죄가 되는 것입니다. 감독자의 삶의 세 가지 필수적인 요소는 사랑과 인내, 그리고 자기가 이끄는 사람들을 권면하고 용기를 주는 능력입니다. 감독자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이상은 목자의 삶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벧전 5:1~4).

우리 모두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능력을 얻어 땅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는 이 위대한 사명을 바로 감당해 나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박조준 목사
웨이크사이버신학원 명예총장

 

[박조준목사] 그리스도인의 사명 < 박조준목사 설교 < 기사본문 - 뉴스포유 (newsforyou.kr)

 

[박조준목사] 그리스도인의 사명 - 뉴스포유

신약성경의 사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어떻게 훈련시키셨는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구속 사업은 십자가상에서 죽으심과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

www.newsforyou.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