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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육소식

성도가 거룩한 성전 돼 말씀 따라 사는 것이 교회의 갈 길 - 뉴스포유

[웨이크사이버신학원 릴레이 특강] 림택권 박사의 진정한 성전의 의미

 

 

성경적성경연구원이 2017년 10월 서울 거룩한씨성동교회에서 진행한 종교개혁500주년 포럼에 참석한 교계 인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웨이크사이버신학원 제공

교회에 대한 바른 정의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건물에 자신을 의탁하지 않으셨다.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는 말은 눈에 보이는 건물에 관심을 갖기보다 건물 안에서 일어나는 예배와 행함이 하나님 앞에 진실한가에 관심을 두라는 의미다.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요한복음 2장 24절의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우리 삶에 중심이 되셔서 인도하시는 상태를 예수를 믿는다고 한다. 우리 삶이 전적으로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상태를 말한다.

스데반은 설교에서 “다윗은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라 했는데, 솔로몬은 집을 지었다”고 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사도행전 7장 46~47절은 이렇게 증거한다.

다윗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성전을 건축하라 했는데 솔로몬은 집을 지었던 것이었다. 집의 주인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할 성전은 사람이 통치하는 집과 다르다.

솔로몬은 이방 여인들을 첩으로 받아들여 왕궁에 온갖 이방신이 난무하도록 내버려 뒀다. 다윗은 하나님의 처소를 만들라고 했는데 이방신을 섬기는 퇴폐적인 곳으로 전락시켰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자신이 통치하는 세상을 만든 것이다. 일천번제를 드렸던 신실한 왕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성전과 회당중심의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기에는 성전에 올라가지 못했다.

지금 전 세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모여서 예배드리는 게 어려워졌다. 건물 중심에서 말씀 중심으로 제2의 종교개혁을 해야 할 중대한 시점이 됐다. 요한복음 2장 19~20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고 했다.

예수님께서 46년 동안 지은 헤롯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성전을 일으키리라고 하신 것이다. 이 성전은 십자가 죽음 이후 3일 만에 부활하시는 예수님 자체가 말씀이라는 의미다. 건물 중심의 신앙생활에서 말씀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가 성전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중요하다. 요한복음 4장 20~24절에는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난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온다. 중요한 건 예배의 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예배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전에 모이기에 힘썼다. 그런데 초점이 건물에 있지 않다. 예배하는 곳에 모여 그들이 행한 일에 맞춰져 있다.

중요한 건 그들이 모여 행한 일을 통해 교회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벌하신다는 말씀을 주시는 것은 우리가 거룩한 몸으로 성전을 짓고 성결하게 관리하라는 걸 의미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화려한 건물이 아니라 성도들이 말씀 안에 바로 서서 세상과 구별된 성결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초대교회를 주목하는 건 건물이 아니라 그 공동체 안에서 일어났던 일 때문이다. 중요한 건 예배 공동체가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사도행전 2장 42~47절을 보자.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먼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돼 있다. 사도를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 교제했다고 했다. 떡을 떼며 기도도 했다. 초대교회 공동체가 성도의 삶을 등한시한 게 아니라 의식주 문제를 함께 상의했고, 그 삶의 한 가운데서 기도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공동체를 사람들이 두려워했다고 말한다. 이유는 초대교회에 성령님의 임재와 다스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의 의미는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느냐, 혹은 얼마나 사람이 많이 모였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교회가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는 목적을 위해 가고 있고 성도들이 그 목적을 위해 헌신하느냐에 달렸다. 즉 말씀에 따른 삶을 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그 상태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다면 교회는 세상의 소망으로 떠오를 것이다.

 

림택권 박사

약력=단국대 및 총신대 졸업,

미국 시카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박사.

아세아연합신학대 총장 역임.

미국 필라델피아연합교회 공로목사,

성경적성경연구원장,

웨이크사이버신학원 명예교수